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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의례

전시공간 / 제3실 민속의 마당 /

출생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개인은 한 종류의 집단에서부터 다 집단으로 옮겨가 지위가 바뀌거나 생의 중요한 사건이 되풀이 될 때 인간이 치르는 일정한 집단적 의례를 통과의례라 한다.

개인은 가족, 친족, 촌락의 구성원으로서 그 개인의 사건은 사회집단 전체의 것으로 인식되었기에 한 사회집단 의 성원은 그 사회가 규정한 일정한 시기에 모두 동일한 형태의 의례를 치르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통과의례는 모든 사회에 존재하지만 사회구조나 문화의 차에 따라 강조하는 의례가 다르고 절차 또한 다르기 마련이다.

우리사회도 역사에따라 각기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규범과 절차가 진행되었는데, 현재까지 우리 생활에 반영되어 있는 통과의례는 조선시대의 잔영이 많다. 이처럼 남원은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그 사이의 비옥한 평야 등 천혜의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멋과 여유를 누리는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그리고 이 멋과 여유는 삶 속에서 문학이나 음악 같은 예술로 분출되었다.

출생 (出生)

출산의례는 한 개인의 생이 시작되는 의례로써 통과의례의 첫번째 과정이다.

가). 기자(祈子)의례
아들이 대를 계승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 이었던 전통 사회에서 자녀를 낳지 못한 여인들은 각종의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 하여 기자(祈子,아이를 갖도록 비는 행위)를 하였다.
나). 해산의례
오래 전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아기 낳는 일을 맡고 있다는 신을 삼신 할멈이라 불렀다. 갓 태어난 아기의 엉덩이에 파란 멍이 있는 것도 삼신할멈이 얼른 세상에 나가라고 엉덩이를 밀어내서 그렇다고 믿었다.
다). 삼칠일 음식
아기가 태어난지 21일째 되는 것을 축하하는 날이 삼칠일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산 모는 물론 영아의 사망률이 높았다. 특히 해산 후 삼칠일이 고비였다. 이 시기 동안 산모는 해산 후 감염이나 하혈 등의 후유증으로 위험한 상태에 이르기 쉬웠고, 아기 역시 질병 감염, 배꼽화농 등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가 많 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칠일은 아기의 배꼽이 아무는데 소요되는 시일이면서 동시에 산모 건강의 회복기라고 보았다. 집안의 어른들은 삼칠일이 지나야 비로소 아기를 친척들에게 보여주었고, 산모 역시 삼칠일이 지나야 하루 6 회 먹던 산식을 3~4회로 줄여서 먹었으며, 이때 부터 가벼운 집안 일을 거들게 했다.
라). 금줄
금줄은 마을사람과 외부 사람에게 성스러운 산고에 접근해서 아이와 산모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대문에 쳐 두었 던 신호의 줄이다. 같은 식구가 아닌 경우 금줄 쳐진 집안에는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아들이 태어나면 새끼줄 에 고추, 숯, 짚 등을 달고 딸의 경우에는 숯, 미역, 솔잎, 종이 등을 달아두어 아기의 성별을 알렸는데 금 줄은 보통 21일 동안 쳐 두었다. 이는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이 들락거리면 삼신할멈이 노해서 아이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기 때 문이 었으나 면역능력이 없는 아기의 보호기능을 하는 매우 과학적인 풍습이다.

아기가 태어난 지 만 1년이 되는 생일에 행하는 의례이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옛날에는 아기들의 사망률도 높았으 므로 1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성장하여 첫돌을 맞는 일은 특별히 중요하여 잔치를 크게 베풀었는데 지금까지 도 이어지는 풍습이다. 돌에는 백설기와 수수 경단, 송편과 국수 그리고 대추와 각양각색의 과일로 돌상을 차려주는 데 의미가 담긴 상차림이다.

백설기는 깨끗하고 순수한 정신을, 붉은 빛의 수수경단은 액운을 면하라고, 배가 볼록 하게 빚은 송편은 식복이 있으라고, 대추와 각양 각색의 과일은 열매를 맺듯이 자손이 번영하라는 축복의 뜻으로,국 수와 타래실은 수명장수를 비는 뜻으로 준비했다.

또 돌잡히기를 하는데 돌상위에 돈과 활, 화살과 붓, 벼루, 먹을 놓고 아이가 첫 번째 잡는 것으로 아기의 장래를 점치며 기뻐하는 풍습 이다. 이때 돈은 부귀를, 붓은 학문을, 활은 용맹을 상징하며 여아일 경우에는 색지,자, 실을 놓는데 이는 바느질솜씨를 여성기예의 으뜸 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관례(冠禮)

관례는 남자 어린이가 15세~20세가 되면 상투를 틀고 어른의 평상복을 입히고 갓(관(冠)을 씌우고 술 마시는 예법을 가르 치며 별호를 지어주는 의식으로 성인이 되었음으로 사회 일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부과하는 의례다. 전통 사회에 있어 그 절차를 보면, 혼례 날짜 20일전이나 한달전에 일가의 어른들을 모시고 관례를 한다. 먼저 날을 잡으면 사당에다 고하는 절을 올리고 가까운 집안 어른들 가운데 유덕하고 예법을 잘 아는 어른을 빈객(賓客)으로 모셔 다가 관례를 주관하도록 한다.

빈객이 관례 할 젊은이의 머리를 빗어 올린 상투를 틀어 주고 망건과 갓을 씌워준다. 그리고 각종 절차에 따라 마련한 옷과 띠, 신발을 갖추기를 세 차례나 한다. 그래서 관례를 흔히 삼가례 (三加禮)라 고 하였다. 삼가례가 끝나면 초례(醮禮)라 하여 관자(冠者:성년해당자) 에게 술을 내리는 의식을 행하고,어른으로서 대접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이름인 자(字)를 지어주었다.

남자가 20세에 관례를 하는 이유는 "남자는 양이고 20은 음수인 바 양이 양다움은 음과 합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라" 고 했다. 이 말은 남자가 남자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생식기능이 왕성한 때에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20세 이전 에 혼인을 할 수도 있으므로 “남자는 15세부터 20세까지 관례를 한다" 고 하여 최소연령을 15세로 정했다. 남자의생 식기능이 아무리 조숙하더라도 15세는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설사 혼인을 하지않더라도 15세부터 20세 사이에 관례를 함으로써 성인으로서의 행세를 하게 했다.

계례(笄禮)

계례는 여자에게 비녀를 찌르게 하는 의례로 비교적 간단한 절차다. 예절을 잘 아는 집안 부인을 큰손님으로 모시고 의례를 행한다.

곧 계례(笄禮)는 여자 어린이가 나이 열다섯이 되면 그 동안 땋아 내렸던 머리를 올려 쪽을 지어 비녀를 꽂는데 이를 합발(合髮)이라 한다. 또한 어른 옷을 입히고 어른다워지기를 당부하는 축사를 하는데 이런 의례는 가계(加笄)라 한다. 가계(加笄) 후 술을 내리는 초례(醮禮)를 행한 후 이름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별명인 당호 (堂號)]를 지어 주었다. 15세에 계례를 행한 이유는 "여자는 음(陰)이고 15는 양수(陽數)인 바 음이 음다움은 양과 합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라"고 해서, 역시 여자의 구실을 할 수 있는 생식기능의 성숙시기를 택했던 것이다.

관례(冠禮)와 계례(笄禮)를 한 후 달라지는 것. 관례와 계례를 하면 이제 어린이가 아니고 어른이기 때문에 대접이 달라진다.

  • ① 말씨:전에는 낮춤말씨 '해라'를 보통말씨 '하게'로 높여서 말한다.
  • ② 이름:이름이 없거나 함부로 부르던 것을 관례와 계례때 지은 자(字)나 당호(堂號)로 부르게 된다.
  • ③ 절:전에는 어른에게 절하면 어른이 앉아서 받았지만 답배를 하게 된다.

혼례(婚禮)

혼례는 남자와 여자가 혼인(婚姻)을 하여 부부가 되는 의식절차를 정한 것이다.

혼인의 의식절차를 정한 예절이라 면 '혼례(婚禮)'라고 해야 할 텐데 '혼(昏)'자를 써서 '혼례(昏禮)'라고 하는 까닭은 혼인예식은 해가 저무는 시간에 올리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는 혼인예식을 해가 저무는 시간에 올리는 이유는 혼인이란 음(陰)과 양(陽)의 만남 이므로 그 시간도 양인 낮과 음인 밤이 교차하는 시간인 해가 저무는 때가 합당하기 때문에 혼인 예식이 끝나면 곧 바로 첫날밤을 차리는 합궁례(合宮禮)를 치뤄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는 일을 혼인(婚姻)이라 하는 이유는 '婚(혼)'은 장가든다는 뜻이고 '姻(인)'은 시집간 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장가들고(婚) 시집간다(姻)'는 말이 된다. 장가든다는 뜻의 글자가 '婚(혼)'이 된 까닭은 저 녁때 (昏)에 여인(女)을 만나는 것이 장가드는 것이고, 시집간다는 뜻의 글자가 '姻(인)인 까닭은 고례(古禮)에 여 자의 집에서 신랑감을 구하는 데는 반드시 중신하는 부인인 매씨(媒氏)에 의해야 했으므로 여자매씨로 인(因)해 남 자를 만나는 것이 시집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혼인은 음과 양이 합하여 삼라만상이 창조되는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 하는 일이며, 대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짝을 찾는 순수한 인정(人情)에 합하는 일이기 때문에 고례(古禮) 에는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인정의 마땅함에 합하는 것(順天地之理 合人情之宜)이 혼인이라"고 했다. 혼인은 집안과 집안의 결연(結緣)이므로 중매인을 통해 혼담이 오가고 두 집안에서 합의가 되면 청혼서(請婚書), 허혼서(許婚書), 사주단자(四柱單子), 연길(涓吉), 물목단자 등의 문서를 주고받으며 혼인 할 것을 결정한다. 혼례식은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올린다.

홀기(笏記; 의식 · 절차를 적은 글)에 따라 신랑이 나무기러기를 드리는 전 안례(奠雁禮)부터 시작하여 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하는 교배례(交拜禮), 술을 주고받는 합근례(合巹禮)를 올린다. 그리고 혼례식이 끝난 후 신랑은 신부집에 3일 정도를 머문다.

전통적 혼인은 의혼(議婚), 납채(納采), 납폐(納幣), 친영(親迎) 등으로 이루어지는 사례(四禮)와 육례설(六禮說)이 있다. 민간에서는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따른 혼례가 가장 널리 행해졌다.

회갑연(回甲宴)

혼례를 치르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살아가다가 나이 61세에 이르게 되면 이를 회갑(回甲)이라 한다. 회갑은 자기가 태어난 해로 돌아 왔다는 뜻으로 환갑(還甲)이라고도 하고 '화(華)'자를 풀어서 보면 61이 된다고 하여 화갑(華甲)이 라고도 하며 이러한 의례(儀禮)를 수연례(壽宴禮)라 한다.

이때 차리는 큰상의 내용은 혼례 때의 큰상차림과 같지만 회갑이나 희년을 축하하는 큰 상차림에는 주빈의 숙부,숙 모 또는 형제, 자매 되는 분들이 배석하게 된다. 자녀들은 만수무강하시라는 헌수배례를 올리고 장성한 자녀 일지라 도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워 주인공께 효도를 다한다. 잔치는 보통 당일에 한하지만 예전에는 3일 동안 광대 등을 불러 놀게 하며 지나는 이들에게도 음식을 대접하는 등 온동 네가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회갑이라는 행사, 즉 수연(壽筵)을 차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후반기(숙종 · 경종)로 알려졌는데 임진(壬辰) 병자 (丙子) 등의 난리를 겪은 뒤에 세상이 자못 태평해지자 언제부터인지 회갑 잔치가 성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연에는 으레 축하의 한시(漢詩)가 따르게 마련인데 숙종(肅宗) 경종(景宗)이전에는 이러한 축시(祝詩)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으로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이 시(詩)는 수연시(壽筵詩)라고 하는데 많은 명사(名士)들의 시를 모아 가 보(家寶)로 삼는 사람도 있어, 이 풍속은 지금도 일부에서 행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수연례라는 말 대신 헌수가장례 (獻壽家長禮)라는 말을 사용했다.

회혼례(回婚禮)

회혼례는 수연은 아니나 역시 나이가 많이 들어야 맞는 경사이다. 혼례를 올리고 만 60년을 해로한 해를 회혼이라 한다. 결혼 60주년을 맞은 부부가 자손들 앞에서 혼례복을 입고 60년 전과 같은 혼례식을 올리면서 '해로 60년'을 기념하는 의례이다. 친척 친지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부모의 회혼(回婚)을 축하한다.

이때가 되면 처음 혼례를 치르던 때를 생각하여 신랑, 신부 복장을 하고 자손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 회혼을 맞은 분들의 복장이 신랑, 신부복인 만큼 그 의식도 혼례 때와 같다. 다만 자손들이 헌주하고 권주가와 음식이 따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회혼례에 차리는 큰상 또한 혼례 때 차리는 큰 상차림과 같다. 그러나 회혼례는 부부가 모두 살아있어야 하고 아들, 딸, 손자, 손녀가 있어야 하며 자녀가 모두 살아야 회혼례를 치를 수 있다. 그래서 오복(五福) 중에서 오래 사는 수(壽)가 으뜸이요, 그 수에서도 가장 선망 받았던 것이 회혼수 (回婚壽)였다. 벼슬한 사람이 회혼례를 맞이하면 임금으로부터 의복과 잔치음식이 하사되고 궤장(几杖)까지 내린다.

각지에서 모인 친지들은 일단 방으로 안내되어 열두폭 병풍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다. 이를 축수 서명이라고 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병풍을 만인병(萬人屛)이라 했다.

상례(喪禮)

상례는 사람이 숨을 거둔 후 장사를 지낼 때 수반되는 모든 의례로 사람이 운명(殞命)하여 땅에 묻힌 다음, 대상(大 祥)을 지내고 담제, 길제(吉祭)를 지내는 것으로서 탈상(脫喪)하기까지의 3년 동안의 모든 의식을 말한다.

효(孝)를 예(禮)의 근본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의 유교적 관념에서는 부모의 상을 당한 것을 큰 불효의 하나로 여겨 장례를 잘 지내려 하였다. 그러기에 우리 관습에 관혼상제의 의례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정중하여 그 절차가 까다 롭고 그 이론이 구구한 것이 바로 상례 이다.

상례에는 초종(初終), 습(襲), 소렴(小殮), 대렴(大殮), 성복(成服), 조석전과 상식, 분상, 치장, 천구, 발인, 반곡, 우 제, 졸곡, 부제, 소 · 대상, 담제, 길제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가 있으며 만 2년에 걸쳐 엄격하고 경건하게 행해 졌다.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죽은 자를 섬기기를 산 사람과 같이 하고, 없는 자를 섬기기를 있는 사람과 같이 해야한다 '고 했다. '사(死)'라 쓰지 않고 '상(喪)'이라 쓰는 것은 효자(孝子)의 마음에 차마 '사'라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따라서 '사(死)'는 육신이 썩는 것을 말하고 '종(終)'은 군자(君子)의 죽음을 말하는 바 '사(死)'와 '종(終)'의 중간을 택해 '없어진다'는 뜻인 '상(喪)을 쓰는 것이다.

상여(喪輿)에는 재생을 의미하는 연꽃, 자유로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신성시되는 용과 봉황, 재액을 물리치는 귀면 (鬼面)과 요령(鐃鈴), 죽은이의 영혼을 인도하는 새 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죽은 이가 아무 탈 없이 저승까지 이를 수 있도록 보호하는 기능과 저승에서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상여는 시체를 운반 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집의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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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06월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