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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계곡과 바다로시원한 계곡과 바다로
전시공간 / 제1실 역사의 마당 /

남원에서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남원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남원과 가까운 곡성군 입면의 제월리 · 송전리와 옥과면 주산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남원지역에서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 인다. 또한 남원시 왕정동 만복사지 기린산 자락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물로 보이는 간석기들이 발견된 사례가 있어 그 가능성은 더욱 높다. 특히 만복사지 앞에는 비옥한 넓은 들이 있어 이들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축천(丑川)이, 남쪽에는 요천(寥川)이 있어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했던 여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남원 지역에 구석 기와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 없다하더라도 신석기 시대 후반에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청동기 시대에는 집 단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남원지역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고죽동에서 발굴된 집터와 고인돌(支石墓)이 있다.

대강면사석리고인돌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의 흔적

곳곳에 널려 있는 고인돌

고인돌은 아영면 갈계리 · 청계리 · 고인리, 보절면 황벌리 · 송동면 세전리 · 수지면 산정리, 대강면 석촌리 · 사석리등지에 분포되어 있다. 이 고인돌들은 우선 덮개돌의 방향이 주변의 강이나 개천의 흐름과 일치하고, 그 크기로 보아 큰 세력을 가진 집단에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죽동과 세전리 집터 집터는 고죽동(高竹洞)에서 3기가 발굴되었는데 남원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유적이다.

또한 송동면 세전리 낡은터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로 약 30여기가 확인되었는데 약30㎡(10평) 규모다. 이 집터는 백제초기의 남 원인 고룡군 (古龍郡)의 소재지를 비롯해 한 · 일간의 문화교류를 밝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죽동과 세전리 집터

고죽동과 세전리 집터 유물집터는 고죽동(高竹洞)에서 3기가 발굴되었는데 남원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유적이다. 또한 송동면세전리 낡은터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로 약 30여기가 확인되었는데 약30㎡(10평) 규모다. 이 집터는 백제초기의 남원인 고룡군 (古龍郡)의 소재지를 비롯해 한 · 일간의 문화교류를 밝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북유일의 바위그림

1991년 6월에 대산면 대곡리(大谷里)에서 발견된 바위그림(岩刻畵)은 당시 사람들의 원시 신앙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특히 주로 영남지역에서 발견되는 바위그림이 남원에서 발견된 것은 동 · 서의 문화교류가 있었음 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되고 있다.

이 바위그림은 전북지방에서는 유일한 선사시대의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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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12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