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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문학마을 / 마을체험 /

혼불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
과 애련함,근엄함과 서러움,밝음과 어둠이 댓바람 소리와 함께 대실을 건너 노봉마을과 사매면을 감싸고 돈다.

꽃심을 지닌 땅 노봉과 땀냄새 묻어나는 거멍굴의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혼불을 느낄 수 있다.
실개천을 따라 혼불과 걷노라면 최명희님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혼불문학관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고자 혼을 불사른 최명희님의 뜻을 영원히 기리고,널리 알리고자 하는 아우름의 터전이다.

혼불의 문학정신은 혼불문학관과 혼불의 배경지 노봉마을에서 맑은 샘을 이뤄 넓디 넓은 대으로 힘차게 뻗어 나갈 것이다

종가

종가는 「혼불」의 중심무대이며 청암부인, 율촌댁, 효원과 강모가 거주하던 곳으로 노봉마을의 원뜸에 위치하고 있다.
종가는 청암부인의 기상이 서려있는 곳이고, 종부(宗婦)는 그저 한 사람의 아낙이 아니고 흘러내려오는 핏줄과 흘러가야 할 핏줄의 중허리를 받치고 있는 사람이다.
노적봉의 엄연한 기상이 뻗어 내리면서 또아리를 튼 곳에, 높다랗게 솟아 오른 검은 지붕이 마을을 응시하듯 내려보고 있다.
솟을대문 옆에는 하늘로 치솟을 듯 우람한 둥치의 은행나무가 서 있고, 중마당 안에는 늙은 줄기가 반이나 거멓게 웅크리고 있는 매화 고목이 있다.
종가와 청호자료 다운받기

노봉서원 터

1728년 인조 17년에 건립된 노봉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에 따라 없어지고, 현재는 빈터에 주춧돌만 남아있다. 본래 이 지역은 노봉서원이 있어 서원리라 하였으나, 지금은 인근의 도촌리와 병합하여 서도리가 되었다. 노봉서원은 임금의 이름을 지어 현판을 하사하고, 그에 따른 책, 노비, 토지를 함께 받은 사액서원이다. 이렇듯 유서 깊은 서원의 학풍이 이어져와 훗날 「혼불」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혼불」 자료 나라에서 임금이 몸소 이름을 지어 현판을 하사하시고, 그에 따른 책, 노비, 토지를 함께 받은 ‘사액서원(賜額書院)’이 있는 마을이어서, 매안에는 타성들이 여러 가호 살고 있었다.

현유(賢儒)의 위패를 모시고 유림들의 학문을 장려했던 서원들이 거의 모두 강제로 철거될 무렵, 고종 8년 삼월 열여드렛날, 이 ‘매안서원(梅岸書院)’도 무참히 헐리었는데, 그 훼철령 이후에도 서원에 딸린 사람들은 그냥 매안에 눌러 남아 근근이 살았다. 「혼불」 3권 150-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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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저수지

청호저수지는 비산비야 사질토로 물이 부족하여 농사짓기가 어려워 만든 저수지이다. 마을 서북쪽으로 뻗어내린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맥을 가두기 위해 큰 못을 파고, 그 갇힌 기운이 찰랑찰랑 넘치게 한다면, 백대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을 누릴 만한 곳이다 하여 청암부인은 실농한 셈 치고 2년여에 걸쳐 만들었다.
저수지를 파다가 동서로 열다섯 자 네 치, 남북으로 열넉 자 두 치에 이르는, 보면 볼수록 엎어놓은 조갑지 형상인 실로 거창한 조개바위가 나왔다. 사람들은 이 바위가 이씨 문중과 종가는 물론이거니와 온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될 것으로 굳게 믿었다.

「혼불」 자료
“전에, 옛적에 한 고명허신 어른이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셨더란다. 그 어른이 하루는 이 고을 매안에 머무시면서 시방산세(十方山勢)를 두루 짚어 살피신 연후에, 과시 낙토로서 경우진 것이로다. 하고 감탄을 하셨는데······.”
청암부인은 중간에 잠시 말을 멈추고 이기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만 서북으로 비껴 기맥이 새어 흐를 염려가 놓였으니, 마을 서북 쪽으로 흘러내리는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운을 느긋하게 잡아 묶어서, 큰 못을 파고, 그 기맥을 가두어 찰랑찰랑 넘치게 방비책만 잘 강구한다면, 가히 백대 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을 누릴 만한 곳이다. 하고 이르셨더란다.”
「혼불」 1권 158쪽

새암바위

최명희님이 온갖 정성으로 쓴 「혼불」이 새암을 이뤄 위로와 해원의 바다가 되기를 바라는 최명희님의 뜻을 담아 이 바위를 새암바위라 한다.

최명희 어록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는 날인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새암은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은 강물을 이루며, 강물은 또 넘쳐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련만,
그 물길이 도는 굽이마다 고을마다 깊이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목숨의 혼불들이, 그 바다에서는 드디어 위로와 해원의 눈물나는 꽃빛으로 피어나기도 하련마는,
나의 꿈은 그 모국어의 바다에 있다.
어쩌면 장승은 제 온몸을 붓대로 세우고, 생애를 다하여, 땅속으로 땅 속으로,
한 모금 새암을 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마을, 그 먼 바다에 이르기까지……
.

달맞이 동산

거멍굴의 떠꺼머리 노총각 춘복이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공배네의 보살핌을 받으며 거멍굴 밭 기슭 농막에 혼자 살고 있다. 칼눈썹, 첨도미(尖刀眉)인 춘복이는 강실이를 통한 신분상승을 위해 정월 대보름에 동산에 올라 달맞이를 한다. 아직 아무도 안 본 새 달을 맨 먼저 보면서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면 소원성취를 한다는 것이다.

호성암

풍악산의 동쪽바위가 쌓여진 높은 곳 위에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어떤 도승이 있어 사찰을 경영하였는데 갑자기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앞에서 슬프게 부르고 있었다. 승려가 일컫기를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데 나를 해치겠는가?”하였다. 호랑이는 머리를 조아리며 해치려 하지 않았다. 호랑이를 자세히 보니 짐승의 뼈가 입 가운데 떠받치고 있었는데 승려는 손을 입에 넣어 그것을 뽑아주었다. 호랑이는 제삼 머리를 조아리다가 가버렸다. 다음날 밤 호랑이는 한 마리의 돼지를 던져 주었는데 승려가 일컫기를 “이것은 내가 먹지 아니 하는 바이니 나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 또 한 명의 어린 여자 아이를 데리고 이르렀는데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 그것을 보니 기운이 꺾여 있었다. 곧 그 어린 여자 아이를 따뜻한 곳에 보호하니 소생하였다. 그녀에게 거주지를 물으니 곧 영남의 부자집 외동딸이라 하였다. 그녀를 데리고 그녀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 집에서는 그녀를 찾기 위해 푸닥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극히 놀래고 기뻐하였으며 재산을 기울여 보답하고자 하였다. 이에 이 암자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까닭으로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이다. 郭振文의 古事 가운데 이와 같은 여항산(餘抗山)이 있다.

또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 암자의 승려가 단오일(端午日)에 떡을 만들어 먹고자 하였다. 그런데 바깥 손님들이 싫어하였기 때문에 밤에 모임을 베풀 것을 승려는 평소에 고집하고 판의 떡을 나누려 시끄러울 때 도둑이 들어 사찰에 있던 재물을 모두 털어 가버렸다. 그 뒤 하루가 지나 그 승려는 산 밖으로 나갔는데 들판의 밭에서 호미질을 하다 서로 일컫기를 “웃기는 일이다. 호암(虎菴)의 승려 판의 떡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승려를 비웃는 것으로 이에 재물을 헤아리는 것에 대하여는 이로부터 말미암은 것으로 사람들이 가히 웃을 일이다. 그것을 일러 ‘호암평병(虎菴枰餠)’이라 하니 이로부터 속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최연의 시에 의하면
慓秋將盡 한데 매어 재빠르게 가을은 장차 다하려는지
蕭疎葉半枯 성기고 쓸쓸한 나뭇잎은 반쯤 말랐구나
階愁共 섬돌 귀뚜라미(?)는 수심으로 함께 시끄러운데(門)
山月影同孤 산 위 달그림자 같이 고통을 나눈다.
霧海寧舟 안개 낀 바다를 차라리 배나 저어갈까나(楫)
巖屛自盡圖 바위 병풍이 스스로 산수도를 다한다.
陶潛未斷酒 도연명은 아직도 술을 끊지 않았는지
淨社肯客無 절간에 손님이 없음을 옳게 여긴다.
라 하였다. 이 절은 6.25때 소실되었고, 현재는 암각된 석불만 남아있다.

「혼불」 자료
아랫몰 발끝에 서서 펼쳐진 논밭을 바라보면 어머니의 앞자락 같은 안온함이 느껴지지만, 뒤돌아 노적봉을 올려다보면 그것은 부성(父性)의 웅자(雄姿)가 분명하였다.
이 산의 풍광 명미(明嵋)한 골짜기에, 일찍이 용성지(龍城誌)에도
“그 경치가 아름다워 호남에서 이름난 절”
이라고 씌어진 사찰, 호성암(虎成庵)이 있다.
본디 그 규모가 커서 수도하는 승려가 무려 이삼십 명이나 되었다던 이 절은, 옛날 어느 도승이 좋은 절터를 찾아 남원의 산천을 두루 돌아 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주위의 빼어난 경치에 취한 채 걸음을 멈추고
“참으로 절을 세우기 알맞은 도량이로다.”
탄복하였다는 곳이다.
도환 스님은 상좌 때부터 배운 연봉과 연꽃, 설중화, 오색등화, 불봉화 같은 꽃들을 생화보다 곱고도 섬세 선연하게 지어내는지라. 늘 사람들을 경탄하게 하였다. 특히나 사월 초파일이면 물오르는 수목들의 엽엽(葉葉) 푸른 잎사귀 그늘 속에서, 금방이라도 벙글어져 피어날 듯 탐스럽고 어여쁜 연꽃 등

이 호성암 앞뒤뜰은 물론이요, 노적봉 중턱을 수놓으며 밝혀질 때, 유한한 인생의 발원이 무한하신 법력(法力)에 황홀하게 이르는 것을 실감케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는 청암부인 상을 당하였을 때, 여러 밤을 새우며 꽃상여 꾸밀 연꽃과 연봉을 정성껏 만들어 부조하였다.
꽃 만드는 손이어서 그러한가. 도환은 손이 고왔다.
그리고 중키 넘어 호리한 몸집이며 얼굴 모습도 단아하고 맑은 쪽이였는데, 눈매만은 뜻밖에도 매눈이어서, 웃을 때는 얼핏 잘 모르겠지만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생각할 때 보면, 그 빛이 내리꽂을 듯 날카로웠다.
“도환이가 속가에 있었다면 아마 한량이 되었을 게다. 그 가녈가녈한 몸에다가 꽃 만지는 솜씨 좀 봐라. 영락없지. 귀신이 감겨들게 생기잖었냐. 헌데 그가 기방이 아니라 승문으로 간 것은 오로지 그 눈 하나 때문이야.”
도환을 두고 조부 이헌의는 그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
유가(儒家)에서는 본디 승려들을 쳐 주지 않았지만, 안부인들은 그와 또 달라서 공양미와 불전(佛錢)들을 꽁꽁 챙겨 들고 일만 있으면 때마다 절로 갔는데. 매안에서도, 고리배미에서도, 거멍굴에서도, 호성암은 너나없이 찾아가는 곳이었다. 암주 스님 도환이 이 호성암으로 온 것은 몇 년 전이었다.
「혼불」 9권 13-14

노적봉 마애여래좌상

남원 사매면 서도역에서 서남편으로 우뚝 솟은 높은 산이 노적봉이다. 이 산의 정상에서 약간 아래에 있는 거대한 바위의 동면에 마애 불상구가 조식되어 있다. 육계는 작아 거의 노출되지 않고 있으며 머리는 나발로 처리하였다. 귀는 길어서 어깨에 닿을 정도이다. 눈썹과 눈이 길게 처리되었고, 코는 큰 편이며 입은 아주 작게 조각되었다. 광대뼈 아래가 죽어 있으며 턱은 작은 편이다. 얼굴에서는 풍족한 상을 느낄 수 없고 어떤 사색에 잠긴듯한 인상을 짓고 있다.
목은 짧은 편으로 이에는 3도 처리가 되어 있지 않다. 어깨는 수평에 가깝게 처리되어 경직된 감을 준다. 법의는 통견의이다. 의문은 양쪽 어깨와 팔뚝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바 왼쪽 어깨부분의 선문은 아래로 평행으로 내려졌으며 오른쪽 어깨 위에서는 곡선으로 겹쳐진 의문을 표시하였다. 법의는 결가부좌한 모습이 분명치 않으나 광배로 비추어보아 좌상임이 틀림없다. 무릎 아래에는 복변의 양연이 조시된 흔적이 보이나 마멸이 심하다. 광배는 3중원형으로 처리한 두광과 신광으로 되어있다. 이 3중원은 넓은 띠로 처리하였을 뿐 그 이외의 별다른 조식은 없다. 이 불상은 겹친 의문이나 상현좌 표시가 고식을 따르고 있으며 안상의 조식이나 수평의 어깨를 보아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늦바우 고개

늦바우고개는 강모가 육십 중반을 벗어난 안서방의 등에 업혀 면소재지 오신리의 보통학교를 다닐 때, 소피를 보기위해 쉬어가던 고개이다. 늦바우는 평평하고 넓은 안반 같은 바위로, 장정 서넛은 충분히 들어앉을 수 있는 넓이였고, 걸터앉기에도 알맞은 높직한 것으로 매안에서 남원으로 가는 장길에서 큰 위안거리였다. 고개의 수풀은 진한 솔 향기를 뿜어내고, 분홍 진달래, 으름 머루, 다래들이 손만 뻗치면 얼마든지 잡히며, 빨간 열매를 줄넝쿨로 달고서 다른 나무 줄기를 휘감고 있는 망감도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림] 강모가 다니던 면소재재의 사매초등학교. 사매면민축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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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12월22일